“한 생각만 바꾸면 세상 터득하는 지혜가 됩니다”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스님

1961년 13세 해인사 발심출가
22살 때 오른 세 손가락 소지공양
태백산 도솔암서 생식 장좌불와…
2004년 충주 석종사 창건 ‘공덕’
석종사 금봉선원서 후학들 제접
매월 넷째주 육조단경 강설법회
통쾌한 설법 전국 불자들 몰려와
“일행삼매는 영원한 평화…
내 안에 일어나는 생각·분별심
‘나’라고 착각하면 안돼
본마음서 파생된 그림자일 뿐”
“이 세상은 한 생각만 바꾸면
욕망의 ‘탐심’이 ‘계’가 되고,
성내는 ‘진심’이 ‘정’이 되고,
‘어리석음’이 ‘지혜’가 됩니다.”
새해가 밝았다. 1월27일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대종사를 찾았다. 요즘 스님은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육조단경 강설’로 대중을 만난다. 삶을 통찰하는 불교의 진면목을 특유의 통쾌한 언어와 유머로 친절하고 적확하게 제시하는 스님의 명법문을 듣기 위해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전국서 불자들이 새벽부터 몰려온다. 발디딜 틈이 정말로 없는 석종사 대웅전에는 선지식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 새해에는 기필코 내 안의 부처를 찾고야 말겠다는 기운이 어렸다. 지독하게 고요했지만 간절하고 절박한 에너지가 꽉 들어 차 있었다.
법회에 앞서 조실채에서 스님을 만났다. 살만한 세상이지만 사람들은 갈수록 힘들어 한다. 각박한 현실에 못견디고 짓눌려 끝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이들도 많다. 정신적 장애가 심각한 어린 초등생 중학생들도 증가추세다. “60여년 전 태백산 도솔암에서 다친 다리가 재발해서 요즘 다리고생을 해요. 통증이 심해서 밤잠을 설칠수록 밤에 우는 새 울음소리가 훨씬 깊이 들리고 밤하늘 별도 얼마나 그윽하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아프다는 것이 얻는 것도 많은 것이구나 싶어요. 무엇이든 탁하면 아픈 줄도 모르는 법. 아파봐야 길을 찾지.”
스님은 대뜸 오늘 오면서 강물을 보았냐 물었다. “보살님이 본 강물은 보는 찰라 바다로 흘러가 버렸어요. 다 지나가 버렸어. 그런데도 보살님은 서울로 올라가면서 그 강물을 다시 보는 것으로 착각하지. 강물이 흘러가버린 것을 있는 것이라 착각한 상처를 내가 붙들고 있어서 스스로가 괴로움을 찾는 꼴이지. 순간순간 지혜로 비춰보면 될 것을….”
‘내로남불’이니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시시비비 가리느라 싸우고 할퀴는 삶도 어디나 여전하다. 스님은 간명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선방 스님들이 석종사 날씨가 주인(혜국스님 지칭) 닮아서 춥다고 합디다. 나는 춥다는 생각을 안하고 사는데 대중이 춥다고 하면 그 쪽이 맞지. 상대방이 맞다는 걸 인정해버리면 시비가 끊어져.”
사진촬영이 시작되자 스님은 재미난 일화를 들려줬다. “사진관에 여권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사진사가 다 찍은 사진을 화면에 띄워놓고 여기저기 손을 대길래 뭐하시나 물었더니 점이나 주름을 지워준다는 겁니다. 내가 살아가며 어려움을 이겨낼 때마다 남긴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발자욱인데 왜 지우냐 항의를 했어요. 사진사는 십수년 사진사 하면서 주름살 못지우게 하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지우다 만 사진을 그대로 인화해서 주었어요.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얼굴 한쪽은 주름 그대로고 한쪽은 너무 깨끗해서 짝짝이 얼굴이야. 하하하.”
스님은 말했다. “나이 들어가면서 사람이 늙는 모습이 참 보기 좋은데 조금이라도 젊어보이려고 발버둥치는 ‘실패작’들이 많아. 우리 석종사 보살님들도 실패작이 많아. 얼굴이 나이에 걸맞게 들어보이는 것이 성공이거든. 석종사 아랫마을 과수원 농사짓는 할머님들은 구릿빛 얼굴에 주름살이 나 있는데 그 얼굴이 바로 성공한 얼굴이구나 싶어요.” 스님은 기자의 나이를 묻더니 “기자님도 실패작”이라고 했지만 내심 기분은 좋아서 감사인사까지 했다.

스님은 법회 시간이 되자 가사장삼을 수하고 대웅전에 들었다. 법상에 오르기 전 대중들과 예불을 올렸다. 대중들과 함께 부처님을 외고 대중들과 똑같이 절을 올렸다. 스님의 오른손은 세마디가 없다. 스물두살 젊다 못해 아직 어린 스님은 잠이 수행에 걸림돌이 되자 부처님께 잠을 극복하고 깨달음에 이르게 해달라고 서원하며 해인사에서 10만배를 한 후 검지와 중지, 무명지 세 손가락을 소지공양(燒指供養)했다. 연지공양 후 6년동안 서슬퍼런 정진을 했던 태백산 도솔암에서 홀로 생쌀과 솔잎을 먹었고 수마(睡魔)를 물리치려 장좌불와를 고집했다. 그럼에도 밀려드는 졸음에 대들보에 줄을 묶어 고개를 집어넣기도 하고, 물을 가득 담은 두툼한 쇠발우를 머리위에 얹은 채 정진을 계속했다. 화두가 성성해지자 시간은 이미 의미를 잃었고 하루종일 앉아 있어도 머리 위 쇠발우에는 물 한방울 떨어지지 않았고 거센 수마의 공세도 더 이상 그를 옭아맬 수 없었다. 그렇게 2년7개월. 산을 내려온 스님은 전국의 선방을 떠돌며 정진을 계속했고 2004년 이 곳 충주 석종사를 창건했다.
법상에 오른 스님은 대중에게 물었다. “내가 내 마음대로 안되고 남편과 부인 아들과 딸이 내 마음대로 안되고, 세상살이가 내 마음대로 안되는 이유가 뭘까요?” “부처님은 탐진치심 때문이라고 하셨다”고 스님은 말했다. “탐심은 욕망입니다. 어린 시절, 검은 고무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고 옷 한 벌 사서 3~4년 입어도 부족한줄 몰랐지요. 끝없는 욕망은 남하고 비교하는데서 비롯됩니다. 남보다 더 갖고 남보다 더 잘나고 싶다는 욕망…. 불편 불만속에서 성질을 내는 진심(瞋心)도 이겨내어 마음의 평화로 가야 합니다. 어리석음도 마찬가지. 우리는 어리석음 때문에 한평생 놓치는 행복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어리석은 욕망에서 한 생각 달라지면 ‘계(戒)’를 지키게 되고 성내는 그놈이 딱 한 생각 달라지면 비로소 ‘선정’에 이르게 됩니다. 한 생각만 바꾸면 이 세상을 터득하는 지혜가 됩니다.”

혜국스님은 육조단경의 핵심을 세가지로 꼽았다. 무념을 으뜸으로 삼고(무념위종, 無念爲宗), 무상을 몸통으로 삼으며(무상위체, 無相爲體), 무주를 근본으로 삼는다(무주위본, 無主爲本)는 가르침이다. 특히 무상위체에 주목했다. “상(相)이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분별상입니다. 누구를 탓하고 모함하고 욕하고, 아들 딸이 말 안듣는다, 며느리가 영 마음에 안든다…. 무상은 내 안에 있는 분별상에서 벗어나는 자리입니다. 내가 인간세상에 와서 전생에 가지고 온 시나리오대로 연극 한 판 하는데, 조금 앞서갔다 조금 잘나간다 해봤자 분별심일 뿐. 내게 일어나는 생각에 속지 말자 이겁니다.” 해가 바뀌니 사주팔자를 보러 간다는 사람들도 있다. “어디 가서 물어봐도 괜찮아. 그러나 안물어봐도 아무 상관이 없다”며 “운명(運命)이란 것은 운전할 운, 내가 운전수란 이야기지. 내가 운전하고 내 마음이 나를 지휘하는 이치입니다. 자식도 마찬가지. 부모 말 잘 들으려고 태어난 생명들이 아닙니다. 강물처럼 흘러 제 갈 길 잘 가려고 태어난 존재들이에요. 내 품안에 붙들어 놓고 내 맘대로 되길 바라면 그게 가당키나 할까요?”
한평생 수좌로 살라온 혜국스님은 화두참선의 대중화 현대화 생활화의 중심에 서 있다. “우주 삼라만상 모든 존재와 낱낱 생명 그대로가 부처라는 가르침, 이 도리를 깨달으면 서 있는 그 자리가 극락이요 해탈입니다. 부처님이 고구정녕 일러주신 화두참선법이란 이 몸뚱이 속에 있는 부처가 오늘도 좋은 쪽으로 핸들을 돌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화두란 내 마음을 바로 보는 ‘암호’와 같습니다.”
스님은 내 안에 있는 모든 감정이 내 안에 있는 부처님 안으로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경지를 설명하며 ‘일행삼매(一行三昧)’를 강조했다. “일행삼매는 영원한 평화, 일심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내 안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과 분별심을 ‘나’라고 착각합니다. 내게 일어나는 생각은 내 본마음에서 파생된 환영(幻影)이고 한번 일어나면 없어질 그림자일 뿐입니다. 이 생각에 속거나 끌려 다녀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은 내 마음에 따라 한 생각만 바꾸면 ‘탐심(貪心)’이 ‘계(戒)’가 되고, ‘진심(瞋心)’이 ‘정(定)’이 되고, ‘어리석음(癡心)’이 ‘지혜(慧)’가 됩니다. 내 마음은 내가 지휘하고 운전하는 방향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다른 일화를 들었다. “어느 학인이 ‘어떻게 하면 나와 남의 갈등을 뛰어넘을 수가 있고, 어떻게 하면 온 인류가 평화의 꽃을 피울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육조 스님 대답은 ‘앞생각을 끊어버려라’였습니다. 앞생각을 끊어버려라 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어제까지 있었던 것은 지금 없는데, 우린 이미 흘러가서 없는 것을 가슴에 딱 붙들고 있습니다. 그게 네 편과 내 편으로 나누는 번뇌 망상입니다. 그렇게 번뇌 망상이라고 하는 생각의 감옥이 있다면, 우리는 그 놈을 붙들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의식개혁을 해야 합니다.”
바야흐로 갑진년 용의 해다. 같은 용이라도 동서양이 다르다. “서양의 용은 날개가 있어서 날아다니며 불을 뿜고 재앙을 만들어 불운을 상징하지만, 동양의 용은 날개가 없지만 액을 막고 복을 기원하는 희망과 도약을 상징합니다. 날개가 없는 우리의 용이 자유자재로 좋은 기운을 퍼뜨리는 것은 온 몸이 날개이기 때문입니다. 금년에도 인생살이 운전 잘하세요. 내 마음의 번뇌망상을 일행삼매가 되도록 운전하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혜국대종사는…
1948년 제주도에서 태어난 혜국스님은 1961년 13세 때 해인사로 출가, 일타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70년 범어사에서 혜수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한 스님은 오른손 검지와 중지, 무명지 세 손가락을 소지공양(燒指供養)하고 태백산 도솔암에서 2년7개월간 생식과 장좌불와 정진을 했다. 경봉스님과 성철스님, 구산스님 회상에서 수행정진했고 1980년대 해인사 송광사 봉암사 칠불사 수도암 등 제방선원에서 수십안거를 성만했다. 1994년 제주 남국선원을 개원하고 1997년 부산 홍제사를 창건한데 이어 2004년 충주 석종사를 창건, 석종사 금봉선원에서 후학들을 제접하고 있다. 2018년 조계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를 품서했다.

충주=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사진=이시영 충청지사장 lsy@ibulgyo.com
[불교신문 3807호/2024년2월13일자]